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소카와 모리히로 (문단 편집) == 배경 ==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호소카와 가몬.svg|width=100%]]}}}|| || [[호소카와 가문]]의 가몬(家紋)인 구요(九曜) 문장. || [[에도 막부]](江戶幕府) 시절 [[구마모토]](熊本) 번의 영주이자 [[센고쿠 시대]](戰國時代) [[호소카와 후지타카]](細川藤孝), [[호소카와 타다오키]](細川忠興) 등으로 유명한 명문가 히고 호소카와 가문(肥後細川家)의 제18대 당주(장손)다. 호소카와 가문은 [[세이와 덴노]](清和天皇)의 피를 이은 세이와 겐지(清和源氏) [[아시카가]](足利) [[정이대장군]](征夷大将軍)의 방계이며, 1633년부터 12대 238년간 구마모토 번의 영주를 거쳐 [[메이지 유신]](明治維新) 때 [[후작]]에 봉해졌다. 근세 호소카와 가는 [[호소카와 후지타카]]부터 시작된다. 중시조가 되는 [[호소카와 타다오키]]의 정실이 [[아케치 미츠히데]](明智光秀)의 딸 [[가라샤|아케치 타마코]](明智玉子)지만, 타다오키의 서자 중 하나의 후손을 중간에 양자로 들였기 때문에 모리히로는 아케치 집안과 직접적인 혈연은 없다. 그의 아버지 호소카와 모리사다는 "우리 [[가문]]에는 옛날에는 더 좋은 [[보물]]들이 있었지만 [[전쟁]]으로 거의 불탔답니다. 아, [[태평양 전쟁]](1945)이 아니라 [[오닌의 난]](1467) 때."라는 조크를 하기도 했다. 참고로 '''호소카와 가문은 [[오닌의 난]]을 주도한 가문 중 하나'''다. 이 조크는 후에 모리히로가 한 것으로 와전된다. 그의 외조부는 [[중일전쟁]]으로 유명한 [[고노에 후미마로]](近衛文麿)로[* 얼굴을 비교해보면 알겠지만 정말 닮았다. 외조부이니 당연한 걸지도...], 일본 중세사를 주름잡은 [[후지와라]] 북가(北家)의 종가이자 [[고셋케]](五摂家)의 중심으로, 수백 년간 외척이자 섭정으로 귀족계의 정점에 군림했던 [[고노에]](近衛)의 30대 당주였다. 그의 남동생 호소카와 타다테루(細川護輝)는 외조부 [[고노에 후미마로]]와 그 장남의[* 후미마로의 장남 후미타카는 1945년 [[만주 작전]] 종결 뒤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1956년 포로 상태에서 사망해 실질적으로 당주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.] 대를 이어 고노에 가문의 32대 당주가 되었다. 또 고노에 타다테루(近衛忠煇)의 아내는 [[쇼와 덴노]](昭和天皇) 히로히토(裕仁)의 동생 [[다카히토|타카히토 친왕]](崇仁親王)의 장녀 [[고노에 야스코|야스코 내친왕]](甯子内親王)이다. 패전 후 일본은 [[화족]] 제도가 폐지됐지만 그의 혈통은 일본 전통 [[신분제]]의 최상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. 자작의 외손자의 아들에 불과한 [[아소 다로]]와도 비교를 불허한다. [[고셋케]] 중에서도 최고, 일본 화족 최고봉인 [[고노에 후미마로]] 공작의 외손자이자 전통 깊은 호소카와 후작가의 직계로, 현대 일본의 그 어떤 정치인 가문과도 원칙적으로 비교가 안 되는 우월한 혈통을 자랑한다. [[중의원]] 의원을 세습하는 집안이래봐야 옛날 촌장 집안 출신 정도인 경우가 많은데 이쪽은 [[일본 황실]]에 버금가는 최고 중의 최고 [[공가]]인 외가와 구마모토를 지배한 최고위 [[다이묘]]인 친가의 피를 이은 출신이다. 그럼에도 그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으로 알려져 있으며, 일본 환경 운동, 반핵 운동에도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. 의외로 고대사부터 명문 귀족임에도 진보적 성향을 가진 정치인들은 계속 나타났기 때문에 모리히로라고 아주 특이한 것도 아니다. 로마 공화정의 그라쿠스 형제와 초기 공산주의 지도자들을 보면 알 수 있다. 모리히로는 일본 유수의 명문 [[조치대학]]을 나와 중도 좌파 신문인 [[아사히 신문]]에서 [[기자]] 생활을 시작했다. 만 33세 나이에 [[일본 참의원|참의원]] 진출(일본 [[상원]], 1971~83)을 이룬 것은 집안 배경 탓인지 몰라도, 그가 일본의 구체제를 깨고 최초의 비자민당 총리가 된 건 전적으로 그의 정치관과 스스로 이룬 정치 이력 때문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